공서 共棲
그는 목적지에 봄나무가 있든 앙상한 겨울 가지가 있든 개의치 않았다.

3월. 동그란 꽃봉오리가 계절을 미처 따라잡지 못해 입을 꾹 다문, 아직 이른 봄. 두 자매는 넓은 공원으로 소풍을 나왔다. 당초에는 벚꽃이 만개하는 때에 맞춰 놀러 오려 했지만, 명소로 소문난 그곳은 매년 인파로 가득하여 자칫하면 꽃보다 사람에 치이기 십상이라는 이야기가 자자했다. 아직 요란한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두 사람은 고민 끝에 한적한 시기를 택했다. 스이는 유이에게 벚꽃을 보여주고 싶어 아쉬워했지만, 유이는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적지에 봄나무가 있든 앙상한 겨울 가지가 있든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스이와 함께한다는 사실이었다.

 

바구니를 들고 나란히 걷자니 갓 돋아난 잔디가 푸릇한 향을 뽐내며 오늘의 첫 손님을 환영했다. 신중히 자리를 물색하던 스이는 금세 명당을 찾아냈다. 이르게 피어난 꽃망울이 드문드문 매달린 커다란 벚나무 아래였다.

두 사람은 하얀 바탕에 파스텔톤 체크무늬가 새겨진 돗자리를 넓게 펴고 마주 앉았다. 나무 그늘 새로 환한 햇살이 가늘게 떨어져내려 서로의 머리칼이 때로 은빛으로 반짝였다. 유이가 바구니를 열고 싸 온 도시락을 차례로 꺼냈다. 샌드위치와 차, 과자 몇 가지였다. 스이는 엉성하게 잘린 샌드위치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슷하게 생겼으면 매대를 분리해서 놔둬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스이…… 피망도 가끔 샌드위치에 넣기도…… 하잖아.”

“맛이 전혀 다르니까 그렇지.”

 

스이는 오늘을 위해 전날부터 장을 보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다만 과정에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속 재료 중 하나로 파프리카를 사야 했는데 비슷하게 생긴 피망을 사버리고 만 것이다. 눈치챘을 땐 이미 땀 흘린 사투로 요리를 완성한 후였다. 피망은 두껍게 썰려 샌드위치 사이에 안착해 있었고 달걀 샐러드와 뒤섞여 뺄 수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져오기는 했으나, 스이는 줄곧 신경 쓰고 있었다.

스이의 표정을 살피던 유이가 냉큼 샌드위치를 집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쉬지도 않고 씹는 모습은 음식 광고를 찍는 도중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내 꿀꺽 삼킨 유이는 줄어든 샌드위치를 보란 듯이 내밀었다.

 

“……맛있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던 스이가 희미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듣고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유이를 따라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들고 먹기 시작했다. 

 

“매워……!”

 

간간이 혀를 내밀고 식히거나 달콤한 과일차를 들이켰지만, 익숙해지니 나름대로의 감칠맛이 있기는 했다. ‘유이는 어떻게 잘 먹는 거지?’ 쌍둥이의 낯을 살피던 유이는 문득 그의 관심이 다른 쪽에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눈길을 따라가보니 조금 떨어진 풀밭이었다. 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새가 쓰러진 채 떨고 있었다. 고개를 올리니 나뭇가지에 걸쳐진 둥지가 보였다. ‘실수로 떨어졌나 보네.’ 찰나 사고를 스치는 건 그 정도의 짧은 감상. 스이가 별 감흥 없이 고개를 돌리자, 그때 유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이?”

“잠시만…….”

 

유이는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두고 아기 새에게로 다가갔다. 망설임 없이 두 손으로 받쳐 들곤 스이를 돌아보았다.

 

“날개가…… 부러졌나 봐. 고쳐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처음 보는 새를 구하고 싶다며 조심스레 눈썹을 내리는 유이는 어째선지 간절해 보였다. “응, 유이가 그러고 싶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다친 동물을 구하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스이가 행동할 동기가 되지는 못했을 뿐이었다. 유이는 준비해 온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새를 감싸주었다. 여느 때보다 소중한 손길에 스이는 저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유이, 지금 무슨 생각 해?”

“응……?”

 

새가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도록 바구니에 담아 바람을 막아주려던 유이가 멈칫했다. 그는 쉬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더니 가느다랗게 답했다.

 

“스이도…… 나한테, 이렇게 해줬으니까.”

 

연구소를 탈출했다고 해서 유이가 삶의 즐거움을 되찾는 일은 없었다. 사는 곳이 달라져도 반귀는 어디까지나 반귀였고, 결핍은 언제까지나 결핍인 채였다. 다만 전과 달라진 점은 스이와 함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흐릿한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는 요원했으나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확실했다. 스이가 원했고 자신이 따랐다. 현실에 충실할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나뿐인 자매가 알려준 선의가 양손에 놓여 있었다.

 

“이 새도…… 다시 날 수 있게 돼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꺼질 듯 가라앉던 여린 음성은 끊기지 않은 채 문장을 끝맺었다. 스이는 작게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술렁이는 마음을 쉬이 가라앉히지 못해 그저 멍하게만 보였다. 그러던 그가 아차 하며 급히 일어섰다. 이전의 유이와 똑 닮은 몸짓이었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병원에 가야지. 늦으면 악화될지도 몰라.”

 

야생동물의 구조는 시간이 곧 생명이었다. 결정을 내렸으니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할 차례였다. “응……!” 유이는 얼른 짐을 챙겼다. 어쩐지 가슴 한 쪽이 간질거렸으나 여전히 그뿐이었다.

 

자매는 곧장 작은 새를 수의사에게 데려갔다. 다행히 늦지 않았는지 치료는 어렵지 않으리란 진단을 듣고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결국 그날의 소풍은 한 시간도 채 즐기지 못하고 끝나버렸지만, 둘 모두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약속은 열흘에 한 번. 함께 살아갈 나날은 그보다도 더욱 긴 세월. 호시탐탐 틈을 노리던 초조함은 끝내 쌍둥이의 마음에는 숨어들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같은 장소를 같은 계절에 다시 방문한대도, 늘 돌연한 풍경이 가슴 설레며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음을.

 

 

 

 

 

 

 

 

 

 

작가의 말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면, 앞으로 평생 그것을 감히 탐내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상실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지만, 이 ‘피’로 이어진 쌍둥이는 여느 어른보다 의연하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기쁨을 모르는 유이는 미래의 설렘을 약속하고, 연민을 모르는 스이는 하나뿐인 자매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언제나 서로를 포기하지 않은 채,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한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들은 문득 깨달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무엇을 잃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임을.

그런 의미에서 상실의 자매, 스이와 유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걸 충족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서로의 애정을 확신하는 건 분명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