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일배주 卽時一杯酒
“쯔모, 4000 올. 만관.”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사람이 미쳐버린다니까요!”
“알겠으니 진정부터 하지 그래.”

리우는 한가롭게 손목을 틀어 곰방대를 두 번 두드려 털었다. 청자 재떨이가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다급한 마음을 몰라주는 태도에 맞은편에 앉은 의뢰인이 거친 숨을 뱉으며 열변했다.

“그러니까, 우리 형님이 거나하게 취해 돌아와선 옷을 찢고 집안을 뒤엎더니…….”

그러나 리우는 아쉬울 게 없다는 듯 여전히 다리를 꼬고 비뚜름한 자세로 연기를 뱉었다. 뒤편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물어왔다.

“천홍차와 백란화차 중 어떤 걸로~?”
“화차로. 자네는?”
“네? 어, 저는 홍차요.”

물어오는 말에 얼떨결에 답해버린 의뢰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훤칠한 청년이 무어가 즐거운지 빙긋 웃으며 조리대 앞에서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조수인가 하는 양반인가? 밉보이면 큰일 난다던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앞뒤를 모르고 흥분해 있던 의뢰인은 그제야 숨을 바로 쉬기 시작했다. 리우는 이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근래 산야오가 난동 부리는 진상을 몇 쫓아냈더니 이래저래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평범한 가게라면 몰라도, 굽이굽이 뒷골목 사이에 위치한 이 ‘흥신소’는 악담이 퍼진대도 나쁠 건 없었다. 다만 겁을 집어먹고 손님의 발길이 끊기는 건 좋지 못하니, 이쯤 리우가 나서서 적절하게 분위기를 풀어주어야 했다.

“사건의 발단부터 차근차근 읊어보게나.”

지레 겁을 집어먹고 몸을 수그리던 의뢰인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기억을 재정립하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못난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제정신일 땐 도박장에 눌러 앉고, 거기서 나오면 술부터 입에 대는 놈입죠.”

볕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모두 잠에 들어 사위가 고요한 심야. 그 암흑을 틈 타 활동하는 이들은 거리에서 두 갈래로 양분된다. 사회에서 떳떳이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 없는 자들. 그리고, 흔히 요마귀괴라 불리는 영(靈). 같은 그늘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필연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으니 두 어둑살이들을 중재하는 일종의 해결사가 있었다. 그는 악령에 관한 사건이라면 어떤 험한 일이든 처리해 주며, 한편으로는 그 악령을 수집한다는 기이한 소문이 따라붙는 자였다. 리우라는 이름 두 글자 외에는 성씨, 나이, 어디서 왔는지조차 아무도 알지 못했다. 위험한 사건에도 서슴없이 뛰어들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자라는 말만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은 지 몇 해. 어느샌가 그의 곁에는 산야오라는 묘령의 청년이 조수로써 일하기 시작했다. 그 또한 리우와 마찬가지로 근원이 알려지지 않은 정체불명이었으나, 이 바닥에서 그런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닌지라 모두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산야오는 특유의 경박한 태도로 호의를 사거나 휘두를 줄 알아 리우에게 부족했던 처세술을 담당해 주었다. 해결사 2인조는 금세 이름을 떨쳤다. 이제 뒷세계에서 영적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사람은 가장 먼저 그들을 찾아오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리우는 가타부타 덧붙이지 않고 의뢰를 수락했다. ‘저주받은 술’. 그 술을 마신 사람은 하룻밤 만에 총기를 잃고 광기에 휘둘리게 된다고 한다. 늘 다니던 도박장에 다녀온 의뢰인이 심하게 취해서 돌아오더니, 아무리 술에 절어도 하지 않던 별난 언행을 하거나 심지어는 폭력을 휘둘렀다고. 이상하게 여긴 의뢰인이 도박장에 찾아가 물어보려 했으나, 암암리에 운영되는 곳에서 신용도가 없는 일반인을 함부로 들여보내 줄 리 없었다. 그렇게 흘러 흘러 방도를 찾다가 그들의 흥신소에까지 이르렀다. 

“오랜만에 괜찮은 의뢰네. 특별히 내가 나서줄게, 리우 군~”

제 흥미가 돋았을 뿐이나 선심 쓰듯 말하는 산야오를 가볍게 무시한 리우가 겉옷을 팔에 꿰며 일어섰다.

“자네는 돌아가 있게. 위험할 수 있으니 도박장에 대해선 더 들쑤시지 말고 이쪽에 맡겨둬.”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곧바로 일에 착수하려는 기색을 본 의뢰인은 선금을 탁자 위에 올려두곤, 혹여 방해라도 될까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발 빠른 뒷모습에 산야오가 과장된 어투로 감탄했다.

“눈치 하난 빠르네…… 어딜 가도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인걸.”
“먼저 술에 대한 소문을 수집하겠네.”
“도박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사전조사는 필수라네. 사건의 양상을 보아하니, 분명 피해자가 더 있을 거야.”
“아아, 기대했는데~”

리우가 앞장 서자 산야오는 마음에도 없이 투덜대며 따라나섰다. 암흑에 휩싸인 거리 곳곳을 깜빡거리는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낡아빠져 글자가 하나씩 탈락된 간판들은 두 해결사의 외출을 알리듯 몇 번이고 밤바람에 삐걱댔다. 그림자와 그늘을 구별할 수 없는 길 위로 소리 죽인 발걸음이 이어졌다.

곧 리우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저주받은 술에 당해 제정신을 잃은 피해자들은 근방에서 서너 명이 더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모두 같은 도박장을 다니고 있었다. 다음에는 가까운 양조장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소문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새벽녘이 밝아올 때 즈음, 그들은 끝내 한 양조장에서 답을 찾았다. 벽면을 한가득 술 항아리로 둘러싸 여느 가게보다 쿰쿰한 고린내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었다. 주인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초조한 낯으로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따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조차 없는지, 셋은 정리되지 않은 실내에서 겨우 빈 술독 위에 걸터 앉았다.

“당신네들, 이 후통에서 유명한 퇴마사지?”
“비슷한 일은 하고 있네.”
“정확히는 해결사지만 말야?”
“아무래도 좋아. 그 술을 회수해 줘. 부탁이야.”
“그 술을 빚은 게 자네인가?”
“그렇긴 하지만, 난 이런 걸 바란 게 아냐……!”
“말해보게.”
“예전에…… 나는 그 도박장의 단골이었어. 한동안은 승승장구였지. 일을 그만둘까 고민할 정도로. 그런데 한순간, 단 한 번의 판으로 모든 걸 잃었어…… 덕분에 남편이랑 자식은 도망가고, 이 가게도 빼앗기기 직전이야.”
“저런~ 알겠다. 걸려들었구나?”

산야오는 알만하다는 듯 다리를 꼬아 올리곤 말 끝을 늘였다. 갈 곳 없는 주먹을 모아 쥔 주인이 몸을 떨며 이를 갈았다.

“처음부터 함정이었어. 큰돈을 따게 해준 건 나중에 두 배로 털어먹기 위해서였고…….”
“재미없는 방식을 쓰네.”
“그 사장 놈한테 복수하고 싶었어. 칼을 들고 덤빌 용기는 없었지만, 화풀이라도 될까 싶어 골동품점에서 귀신 들렸다는 황구렁이를 사 왔지.”
“그 뱀으로 술을 담근 거군.”
“솔직히, 점주가 귀신이니 뭐니 하는 걸 누가 곧이곧대로 믿어? 효과를 기대하진 않았지. 마음이 급해서 오래 담그지도 않았어…… 사장에게 들어가는 진상품에 몰래 섞어서 넣어뒀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양조장이가 술을 들여보낸 후 수 일 만에 도박장에서 하나둘씩 광인으로 변한 자가 나타났다. 특히 기이한 건 막상 직접 술을 진상 받은 사장만은 멀쩡했다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서민들을 속여 떼돈을 벌었으며 악랄한 정도가 외려 전보다 더 심해졌다. 
놀란 주인이 알아보니, 피해자들은 모두 도박장의 놀이판에 속고 납득하지 못해 항의를 표한 전적이 있었다. 사장이 화를 달래준다면서 직접 불러다 저주받은 술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이미 거리에 파다했다.

“이제 복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다른 녀석들이 괜히 피해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 그 술 때문이라면, 제발 그놈의 손에서 빼앗아 처리해 줘…….”

그리하여 해결사들은 마침내 소문의 도박장에 도착했다. 겉보기에는 다 쓰러져가는 폐건물에 불과했다. 곳곳에 걸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주저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두 사람은 단숨에 그들의 이면을 알아차렸다. 몇 날 며칠을 굶은 이들이라기엔 체격이 남달랐다. 

“경비원이네. 조금이라도 나랏돈 받아먹는 애들처럼 굴면 한꺼번에 달려들겠어.”
“그런 점에선 걱정 없겠군…… 모로 봐도 자네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까.”
“아하하, 상처야. 우리 사장님도 험악한 인상으로는 어디 가서 지지 않을걸~?”

지금껏 함께 헤쳐 나온 아수라장에 비하면 뒷골목의 도박장 따위는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리우와 산야오는 자연스레 계단을 타고 건물의 지하로 내려갔다. 동향을 살피는 까마귀들의 눈길이 등 뒤로 진득하게 따라붙었다.
가장 아래로 내려가니 두터운 철문 앞에 또 다른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이들은 경비원임을 숨기지도 않고 곧바로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이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가게입니다. 외부인은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리우가 말없이 눈짓하자, 뒤에 오도카니 서 있던 산야오가 불쑥 튀어나왔다.

“누가 외부인이래? 회원증 있어.”

그는 품 속을 뒤적이더니 세밀하게 조각된 작은 나무패를 꺼내 내밀었다. 경비원들은 나무패를 면밀히 살피고는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합니다. 들어오십시오.”

리우는 도박장에 여러 번 드나들던 단골처럼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서 대담히 문턱을 넘었다. 산야오는 말 할 것도 없었다. 따라 걷던 그는 고개를 숙이고 리우의 귓가에 장난스레 속삭였다. 

“역시 리우 군의 솜씨라니까.”
“여러 번 내밀다간 위조라는 게 들킬 테지. 기회는 이번뿐이네.”
“헤에, 스릴이 있네. 마음에 들어.”

나무패가 산야오의 손아귀에서 던졌다 받아지길 반복하다 도로 품 속으로 들어갔다. 의뢰인의 형제가 사용하던 걸 받아 리우가 닮게 깎아낸 물건이었다. 원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기 좋게 두 쪽이 나 있어서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공간을 분리하는 용도의 커튼을 걷어내고 내부로 진입하자, 을씨년스러운 폐건물의 복도와는 사뭇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한 층 전부가 여러 종류의 도박을 즐길 수 있는 탁자로 가득 차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손님이 빼곡했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시야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도박장의 풍경이다. 그러나 역시 그들에게는 ‘이면’이 보였다. 

“와~…… 이렇게까지 판을 벌려놨다고?”

널찍한 공간을 휘감아 똬리를 튼 거대한 뱀이 방문자들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었다. 영안이나 영력이 없는 평범한 자일지라도 지척에서 사귀(巳鬼)가 조여드는 압박을 느끼지 못할 수는 없을 테다. 다만 이곳은 도박장이었다. 압박과 긴장이 당연하며, 외려 방심하고 그것들을 놓아버렸다간 단숨에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장소. 때문에 그들은 산 채로 생기를 빨려가며 천천히 뱀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이 드나들 곳이 아닌 뱀굴이로군.”
“어떻게 할 거야?”
“무턱대고 덤벼서 될 상대가 아니네. 저게 깃든 숙주를 처리해야지.”
“흐음, 사장 말이지…… 찾는다고 친절히 마중 나와줄 것 같진 않은데.”
“자네의 특기를 발휘할 차례일세.”
“아하하, 역시 그렇게 되나?”

뒷세계의 주인은 의지만으로 쉬이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스며들 여유는 없었고, 시선을 끌기 위해 사고를 치자니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결국은 고전적인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짜고 치는 판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꾼이 나타나면 과연 어떻게 나올까. 남은 일은 산야오에게 달려 있었다.

“앉아도 되지?”

그들은 빈자리를 찾아다니다 구석진 곳에 놓인 작탁을 발견했다. 청년과 중년 두 사람이 앉아 있었지만, 이미 귀기에 시달려 두 눈에 깃들었던 이지는 흐려진지 오래였다. 세 사람의 내기가 시작되었다. 탁자 위에 던져진 돈다발이 우습게도 결착이 나는 건 금방이었다. 산야오는 패를 버리고 내려두는 데에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으나 머리를 감싸 쥐고 최선의 수를 고민하던 두 도박사는 이내 자처해서 오름패를 갖다 바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스스로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기색이었다. 자연스레 구경꾼이 몰려들어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승리의 비법을 훔쳐보겠다는 범부의 발버둥이었다.

“잃고 싶지 않다는 일념밖에 느껴지지 않네, 당신들……. 그런 마음가짐으론 어떤 내기도 이길 수 없을걸.”

연전연승이 계속되어 쌓인 판돈은 억 단위를 넘어섰다. 차고 있던 시계마저 빼앗긴 첫 상대들은 작탁에서 쫓겨난지 오래였고, ‘내게서 한 판이라도 따내면 여기 쌓인 돈을 전부 주겠다’는 산야오의 선언에 도전자가 줄을 섰다. 하다 하다 상황을 뒤엎기 위해 심판을 보던 직원까지 나서게 됐다. 리우는 그 직원과 산야오 뒤에 선 구경꾼이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고 있음을 목격했으나 구태여 그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의 무대다. 섣불리 나섰다간 도리어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신뢰가 아닌 신용이었다.

침묵 한가운데 각자의 패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연달아 울린다. 네모진 대나무 향이 산야오의 흰 손끝에 스민다. 거액이 오고 가며 손짓 한 번에 누군가의 인생이 통째로 고꾸라지는 찰나였으나 산야오는 도저히 즐길 수 없었다. 부족하다. 스스로 무엇을 잃고 또 얻는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자들과 손장난을 쳐봐야 부질없기는 매한가지다. 더 길게 끌어갈 이유는 없다. 주목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마지막 한 수. 

“쯔모, 4000 올. 만관.”

승자가 종국을 고했다. 직원은 벌어진 동공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산야오의 패를 뒤적거렸다. “이건 사기야!” 그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소리 높여 웃었다. “그건 그쪽 얘기 아니야?” 준비한 돈을 전부 잃은 작사들에겐 아쉽게도 탁자나 패에 속임수는 없었다. 직원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 외치며 어딘가로 빠르게 달려갔다. 해결사들은 생각한다. ‘때가 왔군.’ 
잠시 놀이를 멈추고 기다리자니 예상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매캐한 연기를 가르는 고상한 걸음걸이. 이전에 뛰쳐나간 자가 아닌 멀끔한 복장을 갖춘 또 다른 직원이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구둣발 소리는 기계적일 만큼 명확해 마치 무언가에 홀린 자의 것이었다.

“손님의 뛰어난 성과를 높이 사, 사장님께서 특별실로 초대하셨습니다. 일행분도 함께 오시지요.”
“이거 영광이네. 허수아비들과 노는 건 질리던 차였거든…… 가자, 리우 군.”
“제법 오래 기다리게 했어.”

산야오는 따낸 돈을 살뜰히 챙기는 걸 잊지 않고 직원을 따라나섰다. 재물에 욕심은 없지만, 리우의 장사는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면 몇 달이고 손이 비는 시기도 있어 자금이 많아 나쁠 건 없었다. ‘현세의 인간들이란. 번거로운 방식으로 살아간다니까.’ 

직원 전용 통로를 지나, 짙은 빛깔에 양각으로 화려한 꽃문양이 새겨진 문 앞에 도달했다. 문패는 없었지만 묻지 않아도 너머에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틈새로 새어 나오는 삿된 독기에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였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안내하던 직원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리우와 산야오는 시선을 교환했다.

“준비됐어?”
“뱀 잡이 정도는 어렵지도 않네.”
“평범한 땅뱀이 아닐 텐데.”

짧은 농담이 오갔다. 여기서 물러설 거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다. 리우에겐 제 안위 따윈 까맣게 잊을 만큼 몰두하는 욕망이 있었다. 산야오의 권태로운 삶은 그만큼의 어리석은 욕심이 아니라면 달래지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함께였다. 생을 건 도박과도 같은 동행. 언젠가 반드시 누군가는 고꾸라질 테지만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언뜻 정반대인 그들은 심장 깊은 곳에서 혈관이 얽히듯 복잡하게 얽매여져 있었다.

산야오를 뒤에 세운 리우는 지체 없이 금칠 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경첩이 묵직하게 신음하며 저편의 풍경이 드러났다.
옅은 어둠. 그 새로 길게 매달린 붉은 등 여럿이 간간이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책상, 탁자, 장식장 등 오동나무로 깎인 가구들은 하나같이 모서리마다 금붙이로 감싸져 있으며, 용도 모를 얇은 비단이 묵빛을 띄고 온갖 곳에 걸려 있어 눈길을 빼앗았다. 이다지도 많은 것들이 공간을 숨 막히게 채우고 있는데도 창문은 전부 못질을 해 막아두어 자못 괴기스레 여겨졌다.
중앙에 앉아 있던 중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접힌 눈꼬리와 입매에 걸린 나긋한 미소는 그를 온화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손님들이 우리 애를 손봐줬다지.”
“직원 교육을 더 시켜야겠던걸. 너무 쉬웠어~.”
“하하…… 기개 있는 손님을 만나보는 게 얼마 만인지. 그래, 주머니는 두둑이 채웠나?”
“아직일세.”
“돈을 원하는 게 아니군?”
“자네가 품고 있는 그 뱀술을 받아 가고 싶은데.”

리우가 그의 뒷편을 검지로 가리켰다. 층이 높은 커다란 장식장 한가운데에 검은 술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척 보기엔 특이할 게 없는 물건이었으나 사장의 눈초리가 단숨에 날카로워졌다.

“술 한 잔을 원했으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기보단…….”
“시치미 떼도 소용없네. 이미 다 알고 왔으니.”

사장의 눈꺼풀이 크게 벌어졌다. 좁혀진 동공은 어느새 길게 늘어져 파충류의 모습과 겹쳐졌다. 리우는 동요하지 않은 채 마주 보곤 곰방대를 빼어 물었다.

“네놈, 이제 보니 마를 쫓는 향을 피우고 있구나.”
“후후…… 제법 유용하거든. 자네 같은 것들에게서 풍기는 시취 또한 물리쳐주지.”
“증오스러운 퇴마사들……!”
“그렇게도 부르더군.”

노성과 함께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던 그의 그림자들이 스스로 땅을 기더니 서로 엉겨 붙었다. 빛이라곤 여전히 희미한 홍등뿐인데 무엇을 잡아먹었는지 몇 배로 몸집을 키워 순식간에 방 전체를 뒤엎었다. 사장의 검게 물든 눈과 머리 위로 드리운 사귀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내리꽂혔다. 뱀이 혀를 날름대는 꺼림칙한 마찰음이 사방에서 울려대며 고막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이제 이 자는 나의 외피고, 이 땅은 나의 것이다!”

리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악귀와 대화를 나누어봐야 산 사람은 생기를 빼앗길 뿐이다. 그는 신속하게 품 속에서 부적을 꺼내 발밑과 벽에 붙였다. “육정육갑六丁六甲 육병육을六丙六乙 소솔제장所率諸將 일별병영사귀一別屛營邪鬼…….” 주문을 외는 낮은 음성에 뱀이 괴성을 지르며 거체를 뒤틀었다. 산야오는 마치 남의 일인 마냥 팔짱을 엮고 한 발짝 뒤에서 그들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당장 천지가 뒤집어진대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다.

사악한 뱀의 야망과 뜻 모를 한 인간의 의지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땅이 진동하며 가구가 흔들려 하나둘 쓰러져 부서졌지만 오로지 술 항아리만큼은 장식장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파열음을 내며 떨어진 거울 조각이 리우의 뺨을 가볍게 스쳤다. 핏방울이 흩날리자 그의 눈동자와 같은 색이었다. 그는 붉은 통증에 아랑곳 않고 마지막 진언을 외쳤다.

“……엄엄급급唵唵喼喼 여율령如律令 사파하娑婆訶!”

사귀의 혼이 맥락마다 꺾여 비틀렸다. 사악한 뱀은 사장의 몸에서 끄집어내져 본신이 담긴 항아리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산 자의 영역을 침범하기엔 아직 사체에 깃든 세월과 원한이 부족했다. 이대로 긴장을 놓지 않으면 그대로 봉인될 테였다. 그러나.

“밉고도 미운 것, 저주를 내려주마. 한평생 산 정신으로 황천을 헤매게 해주겠다!”

말라비틀어져 사라지기 직전인 구렁이가 리우의 머리를 삼킬 듯이 입을 쩍 벌렸다. 순간 리우의 시야가 동굴과도 같은 시커먼 목구멍으로 가득 찼다. 그곳은 심연이었다. 그것이 저주한 사람들의 원한과 광기, 고통에 몸부림치는 기억이 질척하게 섞여 남실대 금방이라도 역류할 기세였다. 그 끔찍한 광경을 마주한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야 마땅했다. 하지만 리우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뾰족한 송곳니 새로 고개를 깊숙이 집어넣었다. ‘더, 더 보여줘.’ 도리 없이 흘러넘치는 오염이야말로 인간사의 전부였다. 그야말로 그가 원하는 자극이자 욕망.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폭력적으로 직시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직은 안 되지.”

눈앞이 희게 물들었다. 눈이 부셔 한 번 깜빡이니 뱀의 목구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땅울림이 멈춰 있었다. 멍하니 고개를 내리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개의 머리, 호랑이의 몸체, 여우의 꼬리. 호선(狐仙)의 형상이다.

“……산야오 군.”
“우리 계약을 잊은 건 아니지?”

산야오의 몸집만 한 꼬리가 뒤에서부터 그의 몸을 쓸어내리듯 느릿하게 감쌌다. 오소소 소름이 돋은 리우가 작게 몸을 떨며 미간을 좁혔다.

“잠시 한 눈을 팔았네.”
“앞으로도 날 즐겁게 해줘야 해.”

“지켜줄 테니까.” 과연 누구를 위한 수호일까. 마지막 말과 함께 평소와 같은 산야오가 리우의 옆에 섰다. 무슨 일이 있었냐며 장난스레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여상했다. 잠시 그 낯을 마주하던 리우는 술 항아리로 다가가 겹겹이 부적을 붙여두었다.

“수집품이 또 하나 늘었잖아~.”
“질은 별로지만, 양으로썬 충분하군.”

한 사람과 한 요마는 항아리를 들고 방을 나섰다. 직원과 손님들은 모두 아까의 여파로 정신을 잃은 채였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깨어날 테였다.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은 흐려지겠지만, 적어도 저주를 받거나 저도 모르는 새 패가망신할 일은 없어질 테였다. 제정신으로도 인생을 진탕에 처박는 게 도박꾼들의 주특기인지라 소용이 있을지는 참으로 오리무중이었다.

그날 밤. 리우와 산야오는 마루에 나와 마주 앉고선 술잔을 부딪혔다. 후미진 뒷골목에도 별빛은 공평하게 빛을 흩뿌려 주었다. 둥글게 차오른 달은 잔에 담겨 술 위를 떠다니다, 한 모금을 넘길 때마다 찰나의 별미를 맛보게 해주었다.

“그 양반, 악귀를 냅다 담가버릴 때부터 알아봤어. 주조 솜씨만큼은 좋네~”
“확실히 괜찮군.”
“보수는 보수 대로 받고, 추가 의뢰인에게 술도 받고. 오늘은 운수가 좋다니까.”
“자네가 운이 없는 꼴을 보는 게 더 힘들 것 같네만.”
“평가해 주니 고맙다고 해야겠네. 자자, 건배~”

나란한 그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더없이 좋은 벗이었다. 누구도 서로를 친우라 부르지 않고, 둘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는 우정이 아닌 각자의 욕구였으나 구태여 구분 지을 필요는 없었다. 오늘 사선을 넘기어 내일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옥잔 두 개가 부딪히며 맑은 음을 퍼뜨렸다. 맛 좋은 청주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눌 상대. 야음을 틈타 살아가는 이들에겐 더없는 즐거움이었다.










작가의 말

분량이 한없이 길어질까 봐 다 써내지 못한 설정을 적어봅니다.
리우는 어릴 적 귀신에 들려 가족을 해하고 만 과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정신이 드니 그들의 시신에 둘러싸여 있고, 손에는 칼을 쥐고 있었죠. 조종당했을 뿐인지라 기억은 사라져 있고, 결국 리우의 정신은 부분적으로 망가지고 맙니다. 그 후로 그는 기억에 집착하게 되어 영을 수집해, 그들의 기억을 취하고, 혹여나 자신에게 빙의했던 귀신이 있는지를 살핍니다. 찾아서 어쩌려는 걸까요? 복수하려는 걸지도, 아니면 단지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싶은 걸지도.
산야오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요마입니다. 이 세상에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얼마 없으며, 살면서 해볼 수 있는 건 전부 해봤고, 이제는 그저 지루할 뿐입니다. 그러던 와중 영을 수집하는 기이한 청년을 만납니다. 그는 돈과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현시대와는 정반대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연히 흥미가 돋죠. 이 이라면 내 지루한 생에 새로운 자극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렇게 퇴마사이자 수집가인 청년과 권태로운 요마의 동행이 시작됩니다.

두 사람에게는 ‘가지지 못한 것’을 좇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같은 길을 걷기에 충분한 근원적 갈구죠. 비록 도달하는 끝은 다를지라도, 그 과정에서 충분히 서로가 원하는 것을 서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적당한 광기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데에 알맞은 조미료니까요. 안전제일주의인 세상에서 저 같은 동류를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두 도박사는 본능적으로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손을 내밀고 또 잡을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