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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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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퓨전판타지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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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5


관리자ㅤㅤ

#me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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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로 아끼는 작품이에요. 리뷰도 엄청 진지하게 쓰게 됨

이 소설을 아마 2~3년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 세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백 몇화가 연재될 때 읽기 시작했거든요.
어쨌든 그 후로 쉬는 구간은 있어도 읽고 싶지 않아서 내던진 구간은 한 번도 없던 소설이고, 내내 즐거웠어요 (작품에 대한 이입이 동반하는 심적 고통을 포함해서라도)

개요를 설명하자면, 대한민국의 직장인 김정진 씨는 출판사의 편집자입니다.

어느날 뜬금 없이 투고 메일을 받게 되는데, 그게 무려 6천매입니다. 누가 왜 보냈는지도 모르는 그 소설은 심지어 꽤 재밌어요.

원래 이렇게 아무런 절차 없이 투고 된 글은 답장도 없이 반려하는 것이 수순인데, 무려 6천매나 되잖아요. 게다가 재밌고요. 그냥 무시하기엔 좀 뭐했던 정진 씨는 답장을 보내서 몇 개의 조언을 나눕니다.

그러다 눈 떠보니 이세계고, 그 소설 속이고, 알고 있는 등장 인물들이 정진 씨(이 세계에선 클레이오)를 맞이합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판타지 라이프. 어쩌고 저쩌고.

중요한 점은, 클레이오란 인물은 원래 소설 속에선 없던 이름입니다.
주인공도, 독자도, 작가도 아닌 편집자로서의 삶을 살며 이 이야기를 조심스레 이끌어 나가야 하는 거죠.
보통 이세계로 가는 주인공들이 원래 세계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죠?
가진 게 없거나, 불만족스러운 삶이었거나 해서요.

클레이오는 어떤가? 이 친구도 그렇습니다.
정진으로서의 삶에는 사랑하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 이렇게 된 김에 적당히 잘 살아보려 하죠.
그렇다면 소설 속 세계는 클레이오가 사랑하는 세계인가?
그럴 리 없죠. 얼마나 다른 삶을 꿈꿨던지 간에 난데없이 전혀 모르는 땅에 뚝 떨어지면 누구든 낯설고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문송안함' 은 클레이오가 이 낯선 세계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전에 없던 일을 겪으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친구를 사귀고 기억을 쌓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등장인물이 아니죠.

그는 그들을 제대로 살게 하는 편집자일 뿐이니까요.
작품 바깥으로 나와서, 이건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등장인물들과 함께 웃고 울어도 책 속의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클레이오는 언제나 그런 유리감을 우리와 함께 느껴요.

그런데도 작품 바깥의 편집자와 독자는 그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다른 세계에 속한 인물들인 걸 알아도요.

제가 생각하는 문학의 가장 큰 힘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느끼게 하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공감 능력이죠.

독서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전혀 모르는, 곁에 있지도 않은(그것이 작가든 등장인물이든)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이해하게 도와줍니다.
이건 우리 삶에 아주 필요한 능력이잖아요. 감수성.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함께하려는 의지 자체가 사회에 필요 불가결한 태도죠.

그런 의미에서 '문송안함'은 문학적 감수성을 짙게 만들어주는 작품입니다.
한 평범한 사람이 낯선 세계를 마주하고 그들을 지켜보며 이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니까요.
이건 독서의 과정과 별로 다를 바가 없죠.

제가 취미로 글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말을 배우기 위해서인데,
살다 보면 쓰게 되는 말이 되게 한정되어 있잖아요. 좋을때 아 좋다 하고 싫을때 개같네 하고. 맛있는 거 맛있다고 하고 등등.
그런데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이 가끔씩 찾아와요.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깊은 괴로움을 느낄때, 반대로 굉장히 행복할 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감정을 상대방과 공유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잘 말하고 싶어서 어렵지 않은 글을 찾아서 계속 읽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당연히 재밌어서고요)

이런 목적에서도 문송안함은 저에게 많은 배움을 주었어요.
글을 읽다 처음 보거나, 알지만 정확한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적절히 쓸 줄 모르는 단어가 보이면 찾아본 다음 기록해두는데,
문송안함을 읽으며 새로 쓴 단어만 세 보니 마지막 화까지 무려 174개네요.

문송안함이 웹소설보다 종이책에 더 어울리는 글이란 많은 의견에 저도 동감합니다만,
그래도 이 글은 실시간으로 연재되며 독자들이 느린 일희일비를 경험했다는 것에 많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입과 공감에 힘을 더하는 건 시간이니까요.

웹소설에는 웹소설의 장점이 있는 거고, 좋아하는 글을 집에서 올라오자 마자 읽고, 다른 독자들과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정말 시대의 이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기다리지 않고, 막힘 없이 읽으면 또 어떤 기분일지 궁금합니다. 독서 집중도로만 따지면 이쪽이 훨씬 높겠죠.
아직 읽지 않은 분이시라면 이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괜찮다면 읽어 보시고 감상을 들려주시면 기쁠 겁니다.
한 사람이 세계를 사랑하고 함께 살고자 다짐하는 이야기를요.

이렇게 가독성 나쁜 페이지에 이렇게 긴 글을 쓰다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 정도로 좋았어요. 함께해요~